자유게시판

Title이균 인터넷묘지 비분2021-12-22 20:29
Writer

이균 인터넷묘지 비문.

시조로부터 69세 이균은 신미 1931년7월17  일 (음) 아버님 성인.어머님 안기.의 3형중 막네로 정자리 91번지 (솔봉)에서 태어나셨다.

경주김씨 옥화는 기사 1929년3월19일 (음) 아버님 명제. 어머님 김수명.의 5남매중 장녀로 홍천군 내면 (장촌리)에서  태어나셨다.
두분은 1945년 9월9일 결혼 하여 3남2녀의 자녀를 낳았다.

1948년 정자리 에서 큰아들 상희를 낳아 6.25.전쟁이 발발하기 1년전에 간난아기를 품에안고 시부모님과 함께 정자리에서 양평 단월면 (양은골)로 이사을하여 전쟁속에서
둘째 상천를 낳았다.

공 께서는 6,25전쟁중에 육군으로 입대하여 2사단에서 6년 군복무를 하시며 무궁훈장 을 비롯하여 부대장 표창등 혁혁한 공을 세우셨다.

계급 하사 (일등중사)
군번 (0244574)
생년월일 (1932.07.28)
입대일 1951년1월26일.
전역일 1956년1월3일
전역구분 만기전역.
전역부대 2사단

배위(옥화)는 전쟁이 끝내고 홍천군 두촌면 철정리 75번지 (부체돌) 부체바위옆 오목한곳에 친정 부모님 근처로 이사하여 셋째 상빈를 낳고 넷째 춘희 다섯째 연희를 자녀 셋을 더 낳았다.

공 께서는 1956년 일등상사로 가족이 있는 곳으로 제대하여 농업에 종사하려 하였는데 건강이 좋지 못하여 가장 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못하고 오랜세월 투병생활을 하셨다.
배위(옥화)는 가난한 살림에 눈물겨운 아품을 간직한체 가족의 안녕을 위해 젊음을 불태우며 아내로 어머니로의 위대한 삶을 살았다.

두분 께서는 1968년 부채돌 에서 두촌면 역내리 천주교 역내공소 앞 집으로 이사하여 자녀들을 신앙생활을 할수있도록 인도 하면서 역내공소 재건에 일조 하셨다.
가난속에서도 자녀들을 올바르게 성장 할수있도록 나눔의 삶을 몸소 실천하며 바르고 정직한 인생관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셨다.

세월이 흐르면서 공 의 건강이 조금씩 호전 되어 살림살이도 윤택하게 되었다.
1970년 큰아들 상희을 같은 마을에 살던 경주김씨 명준의 막내딸 순필과 혼인 시켰고.

1973년 인제군 북면 월학리 299번지 대태로 이사를 하면서 뽕나무밭을 다락논으로 개간하여 전형적인 농부의 삶을 살면서 남보다 앞서 선진농업을 받아들이는 열정이 있었다.

둘째아들 상천을 홍천 장평에살고있던 청주한씨의 동춘의 넷째 영화와 혼인 하였으며.
셋째아들 상빈은 울진 정림이 고향인 영양남씨 용묵의 막내 명옥이와 혼인 하였다.
큰딸 춘희를 원통에서 양복 만드는 일을하던 강동김씨 재복 의 둘째 성호와 혼인 시켰고.
막내딸 연희는 육군중사 달성배씨 병기의 장남 정관과 혼인 시켰다.

자녀들을 모두 출가시키고 1988년 셋째를 대구로 시간내고 그 다음해에 춘천 큰아들과 함께 사시면서 5남매의 자녀  손주.손녀를 돌보며노후를 편안하게 보내셧다.

큰아들.상희.자녀2
둘째     상천.자녀3
셋째     상빈.자녀3
넷째     춘희.자녀3
다섯째.연희.자녀2.

공 께서는 (병자)1996년1월16일 (음) 졸 하시니 향년65세셨다.
배위 께서는 (을유) 2005년11월14일 (음) 졸 하시니 향년76세셨다.

Comment
Captcha Code
(Enter the auto register prevention code)
-이균 인터넷묘지 비분2021-12-22